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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15-07-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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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8]황희-소신과 원칙 그리고 관용

황희는 세종 즉위 즈음에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 문제와 관련해서 남원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세종의 부름에 응해 조정에 나왔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이란 있을 수 없으나, 후술하듯이 이때 만약 황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세종은 국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종은 즉위 후 황희를 불러들였으니 이 순간 인재를 알아보는 세종의 뛰어난 혜안을 느끼게 한다. 황희는 이후 예조판서를 비롯해 20여 년 이상 재상직에 있었다. 1452년 그가 사망한 직후에 작성된 실록의 졸기에는 다음과 같이 그를 평하고 있다.

“황희는 관대하고 후덕하며 침착하고 신중하여 재상(宰相)의 식견과 도량이 있었으며, 후덕한 자질이 크고 훌륭하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다. 집을 다스림에는 검소하고, 기쁨과 노여움을 안색에 나타내지 않으며, 일을 의논할 적엔 정대(正大)하여 대체(大體)를 보존하기에 힘쓰고 번거롭게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 재상이 된 지 24년 동안에 중앙과 지방에서 우러러 바라보면서 모두 말하기를, ‘어진 재상(宰相)’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황희가 태종과 세종의 특별 대우를 받으며 24년 간 재상의 자리에 있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소신과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때로는 관용을 베풀 줄 아는 그의 정치적 자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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